레베카 (Rebecca, 1940) Alfred Hitchcoc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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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베카 (Rebecca, 1940) Alfred Hitchcoc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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씽크 들쑥 날쑥 교정

편지 글등 추가 5%

재해석, 교정 15%의 수정자막 입니다.

출처는 홍두깨, HJY 님 입니다.

 

 
rebecca_xlg.jpg
 
 

 

Comments

41 나무꾼선배
명작이죠. 히치콕 작품중에서...^^
12 TimBurton
처음 감상했을 때 결말의 충격으로 몇시간동안 멍때렸는데 자막 감사드립니다 ^^
1 crita
감사합니다
9 공처가
잘보겠습니다.
29 슐츠
감사합니다^^
29 불량아이
감사합니다
GIVE 50 MP 24 경구리
고맙습니다. 영화 잘 볼게요~
S 컷과송
2020. 2. 7. 재감상

단평 : 이름이 불리워질 필요는 없다.

레즈비어니즘이라 명명하기조차 쑥스러운 것은 인물에게 이름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차라리 이는 합일이라기보다 귀환에 가까울 것이다.
레베카라는 죽은 자의 돌아올 때, 그녀에게는 별도의 이름이 부여되어서는 안된다.
이같은 관점에서 관객은 오직 하나의 러브 스토리만을 관람한 것이다.

정확히 말하자면, 사랑의 대상으로서의 남성은 그저 거죽이거나
보살펴야만할 유아에 불과하여 여성은 그를 구원해야하는 모성이다.
전작 <자메이카 여인숙>의 난파선에서 이어지는 선박의 좌초는
여성에게는 각성으로, 남성에게는 귀환의 표식으로 당도한다.
본편에서 거대한 저택이 소멸되어야하는 장소인 것은 남성이 그의
실존이 어디에서 유래되었는가를 인지하는 데 대한 대가인 동시에 레베카의 공간,
즉 자궁으로서의 해안가 먼지 가득한 집과의 대비에서 저택이 공허하기 때문이다.

물론, 이 모든 것은 여성의 꿈의 미로로 오프닝화되었음을 망각해서는 안된다.
더불어, 여성과 남성이 처음 키스하는 것은 신혼 여행 필름을
제외하고는 살인에 대한 죄의식을 토로한 이후여야함도 마찬가지다.
말하자면, 입맞춤은 여성의 이름만큼이나 배제되거나 자제되어야한다.

부르조아 중년남의 유아적 허위는 오직 하나의 대상을 스케치했던
예술의 딸 앞에서 그저 서사에 종속된 유약함으로 위축된다.
여기에는 비록 이름이 없을 지언정 고인의 이름으로 오히려
남근을 상실한 이를 계도하는 유령의 거룩한 무/유명의 귀환이 있다.
S BJCool
감사합니다
20 큰바구
감사합니다 잘 감상하겠습니다^^*
10 넘조아
고맙습니다.
2 celblue
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