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이의 양지 (a Place in the Sun,1951) George Stevens

자막자료실

젊은이의 양지 (a Place in the Sun,1951) George Steve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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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나 아름다워

정말(농담이 아니라) 눈이 멀어버릴 것같던

'아이반호'의 엘리자베스 테일러보다

1년 먼저 이 영화에서 19살의 리즈는

영화 스토리를 잃어버리게 합니다. (단 아이반호는 칼라, 여긴 흑백이죠)


늘 불쌍한 역만맡는 '포세이돈 어드벤쳐'의 뚱뚱한 수영선수 할머니

셜리 윈터즈는 '사냥꾼의 밤' '롤리타'에서 처럼

여기서도 안타까운 배역을 맡아 이끌어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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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보다 씽크같은 기술적인 교정이 많은

약 25% 수정자막입니다.

(예를 들어, 어눌한 몽고메리가 말을 꺼내려는데, 벌써 말할 내용이 가득차게 나와있는...)


어머니께 보여드리려고 정성스레 다듬은

효심 깊은(?) 작업이었습니다.^^*


선 작업자 준홍아빠 mipell님께 감사 드립니다.

PS: 준홍이 많이 컸겠네요, 은영씨는 잘 계신지...(개인적으로 아는 분은 아닙니다, 꾸벅)


 



 

Comments

10 에버렛
감사합니다!
9 공처가
잘보겠습니다.
GIVE 10 MP 17 실룩이
작업하시느라 수고하셨습니다.추억의 영화자막 고맙습니다.
다른 고전영화 최초의 한글자막도 부탁드립니다.ㅎ
GIVE 5 MP 11 방콕맨
감사합니다~.
4 돌짱짱
감사합니다...
11 시절인연2
고맙습니다
14 cowboy
감사합니다.^^
S BJCool
감사합니다
S rayphie
고맙습니다.
6 hwanhoo
좋은 자료 감사드립니다...
감사합니다.
S 컷과송
2021. 11. 7. 감상

단 평 : 시각 언어의 불신이라는 초상


단순히 후면에서 시작하여 전면으로 종결되는 텍스트라고 지정할 수는 없다. 왜냐하면, 가기에는 영화의
속살인 오버랩이라는 양지, 즉 허위의 빛이 투하되기 때문이다. 이 맥락에서 저급한 환원주의로의 라캉,
전후 미국으로 복귀한 상흔에 속박된 병사, 계급은 어떻게 자비롭게 타자화를 실행하는가라는 보수적
이데올로기를 설파하는 것은 표피적이고 간결한 언급이 될 것이다. 그것은 마치 본편이 오프닝 이후에도
인물의 후면, 말하자면 등을 보여주기를 반복함으로서 거의 강압적으로 정면을 부정-거부하는 것과 같다.

이 지점에서 만일 본편이 친절하다면 그것은 흔적을 노골적으로 배치함으로서 서사를 직조함과 더불어
시선의 검열을 수행함에 있다. 가령, 두 인물이 마주보거나 인물 간의 사건이 긴장감을 조성할 때 거기에는
증거로서의 보는 자가 배치된다. 그들은 자신이 본 것을 법정에서 진술하는데, 적어도 이에는 거짓이 없다.
왜냐하면, 그들은 단지 현상만을 전달할 뿐, 구심점으로서의 실체를 시청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를
음성 언어화할 수 있는 유일한 이는 인물 한 명 뿐이며, 카메라는 법정의 퍼포먼스와 다르게 이를 전시한다.

오프닝에서 후면이 아닌 인물의 시선이자 카메라의 시선으로 처음 볼 수 있는 것은 도로 위 광고판이며,
인물의 이름은 필름과 카메라의 조지 이스트만으로 거명된다. 인물이 도주할 때 마치 그 곳에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이 늙은 경관은 그의 이름을 부를 때의 공포는 마치 영화 자체를 단죄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전작 <대학살 : 나치 강제 수용소>에 대해 고다르가 단언하기 이전부터 조지 스티븐스는 영화 내에서
보여준다는 것의 허위와 강압이라는 은폐된 금기를 폭로하는 것을 본편에서 다시 재차 이행한다. 법정의
포먼스 실행자로서의 검사의 하반신 장애 사유는 여기에 있다. 죄는 도덕에 있는 것이 아니라, 음성
언어로 조작된 내부이자 공중의 에피스테메에 있으며 누구도 수면의 위와 아래를 시각화할 수 없다.
18 redondo
고전 명작의 최고봉 중 하나이죠. 아카데미 6개 부문 수상작이고 3번째 비중인 샐리 윈터스가 인상적인... 물론 두 주연 리즈와 몬티 (둘의 별명이었던가요)는 말할 것도 없고... 수고하셨습니다.